도연에게.
도연님, 도연님과 함께한지도 벌써 9개월정도 되어가네요. 서울 사무실에서 어색하게 인사나누었던 그 날이 지금도 생각나요. 우리의 어색한 인사를 지켜보던 다른 직원분들의 웃음까지도요. 
서울에 살고,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한 도연님에게 ‘로컬’이라는 큰 과제가 어떻게 느껴질지 항상 궁금했어요. 한참 바빴던 지난 가을과 겨울, 일주일에 많으면 두번씩 서울과 영주를 기차로 오고가는 일정에 제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힘들지는 않을까? 재미가 없거나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처음엔 별 별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도연님은 마음이 유연하고, 넉넉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같이 출장을 갈 일이 많았는데, 도연님은 늘 그 곳의 매력을 알고자 하고, 발견한 매력을 온 마음으로 좋아하더라구요. 그런 시간들을 거치며 도연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걱정에서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변해갔던 것 같아요.
언젠가, 도연님에게 왜 로컬 부문에 오게 되었냐고 물은 적이 있죠? 도연님은 제 물음에 정성껏 대답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해 스스로 고민중일 수 있겠다 싶어서, 최근에 읽은 책 <복닥맨션>의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해요.
책 <복닥맨션>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로컬에 살고 있는 14명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어떤 사람은 저처럼 직장으로 인해 로컬에서의 삶을 시작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고향이라서, 또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갔다가 그 곳에 정착을 하기도 했대요. 미디어나 매체를 통해 접하는 로컬 거주자들 대부분은 저랑 비슷해서 이렇게 다양한 삶의 이유와, 자기 지역을 바라보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꿈이 로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했어요. 로컬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살며 일하고 먹고 즐기는 일상의 터전이기에, 다양한 모양의 삶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로컬’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 안에 있는 다양함이 오히려 모습을 감추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저도 이 곳에서 나름 ‘다양함’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3년 전 일을 찾아 이 곳 영주에 오게 되었는데요. 우연히 본 채용 공고가 마음에 쏙 들었지만 근무지가 영주여서 포기하려던 참에 제 선택에 영향을 준 친구들이 있었어요. (한 친구는 아파트키즈로 태어나 아파트(도시)에서 죽게 될 우리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고, 한 친구는 실패해도 잃을 것 조차 없는 도시 노동자의 빈약한 삶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친구들 모두 제 상황을 알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친구들의 이야기가 제 선택에 큰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그 때 저는 누군가처럼 서울을 떠나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또 ‘리틀 포레스트’를 꿈꿀 정도로 로컬을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하고 싶은 일이 우연하게도 로컬에 있었고, 제가 이걸 포기하게 된다면 그건 ‘로컬’이라는 이유 하나 뿐이었기에 잠깐의 고민 끝에 로컬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일을 시작하고 나니 저에게서 ‘이유’를 찾는 사람이 참 많더라구요. 제가 도연님에게 ‘어쩌다 로컬 부문에 오게 되었어요?’라고 물었던 것 처럼요. 그게 어떤 마음인지 이해가 가요.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영주가 왜 좋냐고(좋다고 말한 적 없는데), 지역에서 살면 도대체 퇴근 후에 뭐하며 시간을 보내냐고(직장인은 다 똑같은데), 언제까지 영주에 있을거냐고(살 기간을 미리 정해놓고 사는 사람이 어딨다구), 그 질문이 점점 더 다양해졌어요. 사실 이런 질문들에 멋지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거짓말을 하려니 그게 잘 안되어서 ‘어쩌다 그렇게 됐네요…’하고 싱겁게 답하고 말았는데, <복닥맨션>을 읽고 나니 나도 내 삶에 대해 기록하고 공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어요.
나는 이제 내가 누군지 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과 가까이하고 타협할 수 없는지 안다. 어디에도 있지 않고 오직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방법을 안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주를, 나를, 내가 살아갈 오늘 하루를. 도처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_박서영>
제가 <복닥맨션>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이에요. 도연님은 그래도 저를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잘 알겠지만, 로컬에서 일하고 사는 것은 사실 어려운 점이 참 많아요. 그렇지만 또 항상 어려운 것은 아니에요. 어떤 날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알 수 없는 나의 쓸모에 괴로워하지만, 또 어떤 날은 ‘다양함’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점점 이 곳에 발을 붙이고 있는 스스로를 쓰다듬으며 행복해하기도 해요. 이 곳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고요하고 담백한 일상이 저에게 큰 안정감을 주고있고, 서툴지만 조금씩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며 따뜻함을 느끼기도 해요. 무엇보다 로컬이라는 거대한 곳이 다 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결 쉽게 떠나고 여행하며 그 지역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좋아요. 로컬 살이에 대해 저도 아직 100% 확신을 가진건 아니지만 분명한건,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하는 이곳에서의 행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도연님도 로컬에서의 시간을 점점 더 쌓아가다보면 어느 날 문득, 언제 조금 더 행복하고 특별해지는지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그게 언제, 어떤 순간에 올진 모르지만 도연님도 꼭 기록해두었다가 저에게 살짝 알려주세요.
도연님! 우리 팀에 와서, 저와 의견을 나누고 일을 함께 해주어서 새삼스럽지만 고마워요. 도연님도 로컬에서 도연님만의 삶과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할게요. 그러고보니 도연님 영주에 안 온지 시간이 제법 좀 된 것 같은데 얼른 와서 벚꽃 같이 봐요! 도연님이 좋아하는 달달한 와인도 한잔 하고요. 
봄바람이 매서운 3월. 영주에서, 아영이가